동티모르 커피로드_코로나 때문에 갈 수 없는 세상을 떠올리며_나는 걸었고 세상은 좋았어

탐사가 진행될수록 사물에 대한 더 많은 새로운 사실들이 인간의 마음과 정신을 충족시킬 것이다. _ 에드워드 O. 윌슨, 《바이오필리아》 탐사가 진행될수록 사물에 대한 더 많은 새로운 사실들이 인간의 마음과 정신을 충족시킬 것이다. _ 에드워드 O. 윌슨, 《바이오필리아》

여름.가수 장혜진은 <그대라는 계절은>이라는 곡에서 여름을 이렇게 묘사했다. 여름 간지러운 감정의 속삭임 이마에 깃든 그리움 모두 당신이 주는 새로움 여름. 가수 장혜진은 <그대라는 계절은>이라는 곡에서 여름을 이렇게 묘사했다. 여름 간지러운 감정의 속삭임 이마에 깃든 그리움 모두 당신이 주는 새로움

하지만 올 여름은 다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하는’ 여름.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못 가는 세상이 너무 많아졌다. 카페 ‘밤 9시의 커피’도 계획이 틀어졌다. 커피가 익어가는 계절, 커피 농민과 산지를 만날 생각이었지만 포기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었다. 갈 수 없는 세계 대신에 그 해의 여름을 떠올릴 수 밖에. 일본의 여행 사진작가 후지와라 노부야(藤原原信也)가 생각났다. 그리고 걸어다니던 커피 로드가 생각났다. <밤 9시의 커피> 구석구석에 있는 사진들이 그때의 일을 말해주고 있었다. 『인도 방랑』을 출판한 26세 때의 신야가 나에게 말을 걸고 있던 그때, 그의 방랑이 나를 유혹했다. 나도 그처럼 청춘이었고, 삶이 궁금한 방랑객이었다. 그러니까 이런 말 때문이었다. 나는 걸었다. 만나는 사람들은 슬플 정도로 못생기고 어리석었다. 만나는 사람들은 비참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우스꽝스러웠다. 만나는 사람들은 경쾌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화려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고귀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거칠었다. 세계는 좋았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여행은 말없는 바이블이었다. 자연은 도덕이었다. 침묵은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침묵에서 나온 ‘말’이 나를 사로잡았다. 좋든 나쁘든 모든 것은 좋았다. 나는 모든 것을 관찰했다. 그리고 내 몸에 그것을 옮겨 적었다 하지만 올 여름은 다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하는’ 여름.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못 가는 세상이 너무 많아졌다. 카페 ‘밤 9시의 커피’도 계획이 틀어졌다. 커피가 익어가는 계절, 커피 농민과 산지를 만날 생각이었지만 포기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었다. 갈 수 없는 세계 대신에 그 해의 여름을 떠올릴 수 밖에. 일본의 여행 사진작가 후지와라 노부야(藤原原信也)가 생각났다. 그리고 걸어다니던 커피 로드가 생각났다. <밤 9시의 커피> 구석구석에 있는 사진들이 그때의 일을 말해주고 있었다. 『인도 방랑』을 출판한 26세 때의 신야가 나에게 말을 걸고 있던 그때, 그의 방랑이 나를 유혹했다. 나도 그처럼 청춘이었고, 삶이 궁금한 방랑객이었다. 그러니까 이런 말 때문이었다. 나는 걸었다. 만나는 사람들은 슬플 정도로 못생기고 어리석었다. 만나는 사람들은 비참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우스꽝스러웠다. 만나는 사람들은 경쾌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화려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고귀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거칠었다. 세계는 좋았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여행은 말없는 바이블이었다. 자연은 도덕이었다. 침묵은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침묵에서 나온 ‘말’이 나를 사로잡았다. 좋든 나쁘든 모든 것은 좋았다. 나는 모든 것을 관찰했다. 그리고 내 몸에 그것을 옮겨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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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 사람들이 사는 나라, 그때 저는 그의 방랑을 따라잡을 수 없었지만 몸소 느낄 수는 있었습니다. 인도가 아니라 동티모르에서였어요. 로뚜뚜 마을의 커피를 커피 농민을 찾아 떠난 여정에서 저는 그것을 확인했습니다. 나와 그들, 우리는 연결되어 있음을, 세상은 무수한 점의 생명과 노동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말입니다. 그만큼 좋든 나쁘든 제가 발을 디딘 곳은 좋았어요. 로뚜뚜 마을의 별빛이 나를 감쌀 때 나는 기꺼이 내 몸에 그것을 심어 감사했습니다. 그 여름에 커피 산지를 방문했어요. 내가 다루는 커피의 근원을 만나고 싶었어요. 바람, 안개, 공기, 땅, 그리고 농민들입니다. 글과 사진, 관념으로 알고 있던 그 장소를 찾아 떠난 것입니다. 인도네시아 발리를 거쳐 동티모르로 향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직항편은 없었습니다. 발리덴파사 공항에서 2시간 남짓 거리입니다. 그러나 그 두 시간을 더 날 수 있는 정치적·경제적 힘이 없었습니다. 항공 노선은 심하게도 동티모르의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티모르 공화국에 착지했습니다. 동티모르어의 테툼어로 ‘티모르 로로사에'(Timor Lorosa’e)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남중국해와 인도양 사이의 티모르섬의 동부와 티모르섬의 서부 일부만을 동티모르라고 부릅니다. 티모르 섬은 호주와 인도네시아가 통치하는 여러 섬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지리적으로는 오세아니아에 속하지만, 정치·경제·문화적으로는 아시아의 일부로 간주됩니다. 이러한 지형조건은 식민지의 역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1520년부터 400년 이상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독립은 멀고도 험난했습니다. 독립선언을 했다가 인도네시아 무력 침공을 받아 20년 넘게 인도네시아에 강제 편입되기도 했다. 2002년 5월 20일 독립하여 21세기 최초의 독립국이 되었습니다. 박희순, 고창석이 주연한 영화 ‘맨발의 꿈’의 배경이 바로 동티모르입니다. 발리(バリから東)에서 동티모르(ティモールへの旅は)로의 여행은 쉽지 않았어요. 만만디 습성이랄까요? 발리와 동티모르를 오가는 1일 1편 비행기는 연착은 대수, 기다리는 것은 필수였습니다. 메르파티(Merpati비둘기)라는 이름의 비행기는 지금은 사라진 완행열차 비둘기호를 연상시킬 정도로 낡았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바퀴벌레를 만나는 흥미로운 경험과 함께 저는 비둘기 꼬리를 잡고 동티모르로 향했습니다. 동티모르 공항에서 만난 어느 슬픔, 드디어 첫발을 내디딘 동티모르의 첫인상이 왠지 슬펐습니다. 사람이 사는 나라, 동티모르 커피가 자라고 있는 땅. 그래도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이방인의 눈에는 오랜 식민지 지배와 내전을 거친 동티모르의 가난이 눈물겨운 것이었습니다. 한편으로 사람들의 눈빛과 자연은 가난만이 자신들의 전부가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소설가 유재형의 쿠바 기행문 ‘늦은 희망’을 보면 쿠바인의 수도 아바나에 발을 들여놓기 직전 인상적인 표지판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 표지판은 이렇게 말해요. “모든 쿠바인의 수도에 왔습니다.” 쿠바의 수도가 아니라 ‘쿠바인’들의 수도입니다. ‘사람’이라는 말 하나만 덧붙였는데 느낌이 전혀 다르다. 국가가 아닌 사람을 내세우는 발상은 놀랍고 재미있습니다. 체 게바라가 쿠바 사람들과 함께 이룬 쿠바 혁명의 영향일지도 모릅니다. 그 후 어느 낯선 외국 공항에 가면 저는 반드시 표지판을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래도 아직 사람을 전면에 내세우는 표지판을 본 적은 없습니다. 섣불리 <밤 9시 커피>에서는 ‘OO지역 사람들이 만든 커피’라고 가르치면서 자족하는 정도일까요? 물론 동티모르라고 해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땅에 발을 들여놓으면 가장 먼저 환영하는 말은 ‘WELCOME TO TIMOR-LESTE’입니다. “동티모르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래도 그 말이 기뻤습니다. 제가 어디 있는지 알려드릴게요. 아직도 그때 그 하늘이 선명하게 기억나요. 하늘은 맑고 구름은 복이었어요. 처음 보는 하늘이자 색깔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제가 처음 발을 디딘 땅에서 바라본 하늘이었으니까요. 키 작은 하늘도 좋았어요. 동티모르 사람들이 사는 나라, 그때 저는 그의 방랑을 따라잡을 수 없었지만 몸소 느낄 수는 있었습니다. 인도가 아니라 동티모르에서였어요. 로뚜뚜 마을의 커피를 커피 농민을 찾아 떠난 여정에서 저는 그것을 확인했습니다. 나와 그들, 우리는 연결되어 있음을, 세상은 무수한 점의 생명과 노동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말입니다. 그만큼 좋든 나쁘든 제가 발을 디딘 곳은 좋았어요. 로뚜뚜 마을의 별빛이 나를 감쌀 때 나는 기꺼이 내 몸에 그것을 심어 감사했습니다. 그 여름에 커피 산지를 방문했어요. 내가 다루는 커피의 근원을 만나고 싶었어요. 바람, 안개, 공기, 땅, 그리고 농민들입니다. 글과 사진, 관념으로 알고 있던 그 장소를 찾아 떠난 것입니다. 인도네시아 발리를 거쳐 동티모르로 향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직항편은 없었습니다. 발리덴파사 공항에서 2시간 남짓 거리입니다. 그러나 그 두 시간을 더 날 수 있는 정치적·경제적 힘이 없었습니다. 항공 노선은 심하게도 동티모르의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티모르 공화국에 착지했습니다. 동티모르어의 테툼어로 ‘티모르 로로사에'(Timor Lorosa’e)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남중국해와 인도양 사이의 티모르섬의 동부와 티모르섬의 서부 일부만을 동티모르라고 부릅니다. 티모르 섬은 호주와 인도네시아가 통치하는 여러 섬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지리적으로는 오세아니아에 속하지만, 정치·경제·문화적으로는 아시아의 일부로 간주됩니다. 이러한 지형조건은 식민지의 역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1520년부터 400년 이상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독립은 멀고도 험난했습니다. 독립선언을 했다가 인도네시아 무력 침공을 받아 20년 넘게 인도네시아에 강제 편입되기도 했다. 2002년 5월 20일 독립하여 21세기 최초의 독립국이 되었습니다. 박희순, 고창석이 주연한 영화 ‘맨발의 꿈’의 배경이 바로 동티모르입니다. 발리(バリから東)에서 동티모르(ティモールへの旅は)로의 여행은 쉽지 않았어요. 만만디 습성이랄까요? 발리와 동티모르를 오가는 1일 1편 비행기는 연착은 대수, 기다리는 것은 필수였습니다. 메르파티(Merpati비둘기)라는 이름의 비행기는 지금은 사라진 완행열차 비둘기호를 연상시킬 정도로 낡았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바퀴벌레를 만나는 흥미로운 경험과 함께 저는 비둘기 꼬리를 잡고 동티모르로 향했습니다. 동티모르 공항에서 만난 어느 슬픔, 마침내 첫발을 내디딘 동티모르의 첫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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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 사람들의 수도에 있는 딜리 공항은 작고 소박했습니다. 우리 나라의 것과 비교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골에 있는 터미널 수준이었습니다. 낯설음과 설렘이 뒤엉켰어요. 숨을 한번 들이마시고 동티모르를 느껴봤습니다. 분명히 다른 공기가 목구멍을 지나갔어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지만, 어쩌면 고소한 커피 냄새가 날 것 같은 거무스름한 피부의 사람들이 공항을 메우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이상하게 보는 것 같지는 않았어요. 다만 아이들의 시선은 달랐습니다. 경제적으로 가난한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연민을 품은 눈으로 여행자 주위에 몰려들었어요.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어요. 십수 년 전 인도에 첫발을 내디딘 밤처럼 당황했어요. “기브 미 원 달러!” 몇몇 아이들이 나를 둘러싸고 소리쳤다.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줘야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머리가 텅 비어버린 인도의 첫날밤이 떠올랐습니다. 아시다시피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은 너무 빨리 어른이 됩니다. 바라는 바도 아닙니다. 어른들이 이 아이들을 이용해서 먹을 뿐이에요. 아이들은 살기 위해 생존본능을 발동해야 합니다. 공항을 나서는 사람들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동정을 살 수 있는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아이가 아이답게 자랄 수 없는 환경은 아이를 속성으로 삼아 어른이 되게 합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의 눈에서 고단하고 처량한 삶의 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슬픔이 다가왔습니다. 동티모르 사람을 처음 만나서 접한 감정이었어요. 우리를 만나게 해준 커피 딜리 공항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일행을 만나 첫 목적지인 마우베시로 향했습니다. 험난한 길을 달려야 하는 여정입니다. 차창에서도 가난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풍경이 지나갔어요. 다른 동남아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어요. 사람들의 모습 또한 비슷해 보였어요. 오세아니아에 속하지만 그 모습은 틀림없이 동남아시아 사람들이었습니다. 물론 당시 저의 차별적인 시선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분명 동티모르 사람들은 이런 제 생각을 불쾌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서양인은 한국, 일본, 중국인을 구별할 수 없지만, 우리는 구별할 수 있듯이 동티모르인도 동남아시아인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각기 다른 문화와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을 하나처럼 생각하는 것은 여행자들의 무지와 오해일 뿐입니다. 도로 포장 상태가 좋지 않았어요. 덥고 경제적으로 가난한 나라의 여유, 또는 나른함이 도시를 휘감고 있었습니다. 밖의 풍경은 천천히, 아무렇지도 않게 흐르고 있었어요. 노점상들이 곳곳에 진을 치고 있었고 허름한 상점들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집도 대충 지은 것처럼 허술해 보였어요. 이러한 시각은 너무나 깨끗하고 청결하게 구획된 자본의 질서에 익숙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먼지투성이의 도로를 달리는 차에서 저는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밖을 내다봤습니다. 저와 동티모르는 동티모르 사람들은 어떤 우연으로 이렇게 마주했을까요? 어떤 우연한 일이 찾아올지 궁금하고 설렜습니다. 떼툼아라는 말을 쓰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최하위권인 이 나라 사람들. 오랜 식민의 기억과 독립의 스릴도 잠시, 그들은 어쨌든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는 구체적인 존재였습니다. 이방인의 편협한 관점에서 그들을 심판하려는 사고를 막아야 합니다. 동티모르 사람들의 수도에 있는 딜리 공항은 작고 소박했습니다. 우리 나라의 것과 비교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골에 있는 터미널 수준이었습니다. 낯설음과 설렘이 뒤엉켰어요. 숨을 한번 들이마시고 동티모르를 느껴봤습니다. 분명히 다른 공기가 목구멍을 지나갔어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지만, 어쩌면 고소한 커피 냄새가 날 것 같은 거무스름한 피부의 사람들이 공항을 메우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이상하게 보는 것 같지는 않았어요. 다만 아이들의 시선은 달랐습니다. 경제적으로 가난한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연민을 품은 눈으로 여행자 주위에 몰려들었어요.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어요. 십수 년 전 인도에 첫발을 내디딘 밤처럼 당황했어요. “기브 미 원 달러!” 몇몇 아이들이 나를 둘러싸고 소리쳤다.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줘야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머리가 텅 비어버린 인도의 첫날밤이 떠올랐습니다. 아시다시피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은 너무 빨리 어른이 됩니다. 바라는 바도 아닙니다. 어른들이 이 아이들을 이용해서 먹을 뿐이에요. 아이들은 살기 위해 생존본능을 발동해야 합니다. 공항을 나서는 사람들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동정을 살 수 있는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아이가 아이답게 자랄 수 없는 환경은 아이를 속성으로 삼아 어른이 되게 합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의 눈에서 고단하고 처량한 삶의 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슬픔이 다가왔습니다. 동티모르 사람을 처음 만나서 접한 감정이었어요. 우리를 만나게 해준 커피 딜리 공항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일행을 만나 첫 목적지인 마우베시로 향했습니다. 험난한 길을 달려야 하는 여정입니다. 차창에서도 가난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풍경이 지나갔어요. 다른 동남아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어요. 사람들의 모습 또한 비슷해 보였어요. 오세아니아에 속하지만 그 모습은 틀림없이 동남아시아 사람들이었습니다. 물론 당시 저의 차별적인 시선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분명 동티모르 사람들은 이런 제 생각을 불쾌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서양인은 한국, 일본, 중국인을 구별할 수 없지만, 우리는 구별할 수 있듯이 동티모르인도 동남아시아인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각기 다른 문화와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을 하나처럼 생각하는 것은 여행자들의 무지와 오해일 뿐입니다. 도로 포장 상태가 좋지 않았어요. 덥고 경제적으로 가난한 나라의 여유, 또는 나른함이 도시를 휘감고 있었습니다. 밖의 풍경은 천천히, 아무렇지도 않게 흐르고 있었어요. 노점상들이 곳곳에 진을 치고 있었고 허름한 상점들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집도 대충 지은 것처럼 허술해 보였어요. 이러한 시각은 너무나 깨끗하고 청결하게 구획된 자본의 질서에 익숙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먼지투성이의 도로를 달리는 차에서 저는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밖을 내다봤습니다. 저와 동티모르는 동티모르 사람들은 어떤 우연으로 이렇게 마주했을까요? 어떤 우연한 일이 찾아올지 궁금하고 설렜습니다. ‘테툼아’라는 단어를 사용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최하위권인 이 나라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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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잘 살아가는 것이 가장 어렵고 중요하다는 것은 세상 누구에게나 똑같은 사실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같은 하루를 보내고 맞이해. 나는 의도적으로 동티모르 사람들의 삶에 파고든 이방인이고, 동티모르 사람들은 내 삶에 이방인을 맞이했지만 따지고 보면 서로 우연한 일에 휘말린 동지일 뿐이다. ‘커피’라는 필터를 통해 우리는 우연히 만난 셈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너와 나도 그렇다. 커피가 우리를 만나게 해준 셈이다. 차는 계속 바퀴를 굴리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커피가 자라는 곳을 향해서. 문득 차 안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동티모르에 머무르면 어떨까? 동티모르에 온 사람들을 환영하는 인사말을 건넨다면 어떤 말을 건넬까? 어느새 동티모르에 정박한 사람이 된 나는 동티모르에 온 사람들을 위해 커피를 내려주었다. 그리고 그에게 동티모르 커피 한 잔을 주면서 이렇게 말했었다. “여러분이 마시는 동티모르 커피가 자라는 나라에 왔습니다.” 커피라는 말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땅, 태양, 구름, 비, 안개 등의 자연, 그리고 사람들. 한 잔의 커피는 그렇게 사물과 동물의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우연처럼 휘말려 결합한 관계의 결정체가 됐다. 그 관계는 또 커피나 마시자는 말로 흘러간다. 관계가 관계를 낳는다. 여기는 동티모르. 나는 걸어, 세상은 좋았어. G. 낭만(김이준수)콘텐츠특약 | 연합사보 <카페인> 낭만님은 사회적 금융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커피스토리텔러입니다. ‘스스로 걷는 사람’으로서 ‘행복하고 아름다운 세상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마음대로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말을 현실로 만들고자 천천히 걷고 있습니다. ‘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을 쓰고 ‘그림자 아이가 울고 있다’ 스토리텔링을 맡았습니다. 하루를 잘 살아가는 것이 가장 어렵고 중요하다는 것은 세상 누구에게나 똑같은 사실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같은 하루를 보내고 맞이해. 나는 의도적으로 동티모르 사람들의 삶에 파고든 이방인이고, 동티모르 사람들은 내 삶에 이방인을 맞이했지만 따지고 보면 서로 우연한 일에 휘말린 동지일 뿐이다. ‘커피’라는 필터를 통해 우리는 우연히 만난 셈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너와 나도 그렇다. 커피가 우리를 만나게 해준 셈이다. 차는 계속 바퀴를 굴리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커피가 자라는 곳을 향해서. 문득 차 안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동티모르에 머무르면 어떨까? 동티모르에 온 사람들을 환영하는 인사말을 건넨다면 어떤 말을 건넬까? 어느새 동티모르에 정박한 사람이 된 나는 동티모르에 온 사람들을 위해 커피를 내려주었다. 그리고 그에게 동티모르 커피 한 잔을 주면서 이렇게 말했었다. “여러분이 마시는 동티모르 커피가 자라는 나라에 왔습니다.” 커피라는 말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땅, 태양, 구름, 비, 안개 등의 자연, 그리고 사람들. 한 잔의 커피는 그렇게 사물과 동물의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우연처럼 휘말려 결합한 관계의 결정체가 됐다. 그 관계는 또 커피나 마시자는 말로 흘러간다. 관계가 관계를 낳는다. 여기는 동티모르. 나는 걸어, 세상은 좋았어. G. 낭만(김이준수)콘텐츠특약 | 연합사보 <카페인> 낭만님은 사회적 금융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커피스토리텔러입니다. ‘스스로 걷는 사람’으로서 ‘행복하고 아름다운 세상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마음대로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말을 현실로 만들고자 천천히 걷고 있습니다. ‘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을 쓰고 ‘그림자 아이가 울고 있다’ 스토리텔링을 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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